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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소름끼치는 미래 예언,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1964)> 영화로운 생활


“3차 세계대전이 어떤 무기로 치러질지는 모른다. 하지만 4차 세계대전은 아마 몽둥이와 돌로 싸우게 될 것이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샤이닝」, 「스페이스 오딧세이」, 「로리타」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통해 알려진 영화계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 (Stanley Kubrick) 감독.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상상력과 연출력을 통해 SF 장르에 있어서는 후배 감독들의 바이블이자 지침과도 같이 자리하고 있는 그지만, 스탠리 감독이 코미디 장르에도 조예가 깊은 인물이었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빠질 수 없는 희대의 명작,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Dr. Strangelove)」 는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신랄하게 풍자한 블랙 코미디 영화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영국의 '프리미어'지에서 2006년에 실시한 설문에서 “가장 위대한 코미디 영화” 50개 가운데 하나로 꼽혔고,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지에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중 14위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미국 영화 협회에서는 “가장 위대한 코미디 영화 100편” 중 3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영화의 배경은 냉전이 한창 일어나고 있던 1960년대, 미국의 한 미치광이 장군은 소련에 대한 증오를 억누르지 못한 나머지 소련으로 핵폭탄을 발사한다. 그러나 소련에 핵폭탄이 투하되면 소련이 핵전쟁에 대비해 비밀리에 개발 중이던 ‘지구 최후의 날 기계 (Doomsday Machine)이 발동하여 전 지구가 핵폭발에 휩쓸려 방사능 지옥이 되고 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미국의 대통령과 각료들은 소련의 고위 인사들과 함께 핵폭탄을 막기 위한 다급한 회담을 갖게 된다. 그러나 양국의 피 튀기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서로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양국은 결국 핵폭탄 투하를 막지 못하며, 영화의 엔딩은 베라 린(Vera Lynn)의 "We Will meet again(우린 다시 만날 거예요)"이라는 노래와 함께 전 세계가 연쇄적인 핵폭발에 휩쌓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코미디 영화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섬뜩한 연출이 아닐 수 없다. 


감독은 이러한 배경음악을 선곡함으로 인해 “핵폭발 속에서도 100년 후를 대비하여 작전을 짜는 간부와 미·소 각료들을 완벽하게 조롱하고 있다. 또한 그들이 100년 후에도 여전히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며 현재와 같은 긴장상태를 유지할지도 모른다는 체념도 섞여있는 셈이다.


영화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냉전 체제 아래 미국과 소련이 대치하는 상황 속 ‘상호확증파괴’에 대한 비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첨단 과학기술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린 인류가 맞이하게 될 비극이다. 영화를 만들 당시, 스탠리 감독은 군 관련 자문을 얻기 위해 미 국방부의 촬영 협조를 구한 바 있는데, 미 군부는 이 영화가 “자국의 공군 장성들과 사회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스탠리 감독의 요청을 거절했다. 


미 군부가 감독의 협조요청을 무시한 덕분에 영화에 쓰인 대부분의 연출은 조악한 소품이나 합성, 상상력을 기반으로 구성되어야 했다. 스탠리 감독은 실망한 나머지 영화의 풍자적 요소를 강화하고 영화에 ‘과장된 리얼리티’적인 연출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실제로 영화에서 미치광이 전쟁광 미군 장교 역할을 맡은 조지 스콧은 감독의 오버연기 주문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와우, 큐브릭 감독이 사람을 잡는군. 다시는 저 사람과 일하지 않겠어.” 라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과장된 연출은 관객들에게 어필하는데 성공하여 손익분기점의 4배가 넘는 엄청난 흥행을 거두었다. 영화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핵전쟁의 위험을 경고하고 인간 사회의 결함과 한계를 지적’한다는 목표를 이루었으니 감독의 의도는 충분히 달성된 셈이다.


영화가 제작된 시기가 냉전 체제였다는 점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당시 세계는 좌에서 우를, 우에서 좌를 제대로 언급하는 것조차도 금기시되던 꽉 막힌 시대였다. 이런 살벌한 시대에 평범한 전쟁영화도 아니고, 미·소 양쪽을 동시에 우스꽝스럽게 희화화시키는 코미디 반전영화를 선보인다는 것은 웬만한 담력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스탠리 감독은 훗날 당시를 회고하며 ‘FBI에 끌려갈 각오로 제작했다’는 코멘트를 남기며 웃어버렸다고 한다. 문자 그대로 ‘용자’라고 칭할 만하다.



이제 영화에 등장하는 ‘스트레인지러브’ 박사에 대해 알아보자. 스트레인지러브 박사는 영화의 중후반부가 되서야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는 버젓이 ‘스트레인지러브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일수도 있는데, 지금부터 왜 이 영화의 제목에 이 박사의 이름이 붙었는지에 대해 고찰해보기로 한다. 스트레인지러브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력을 지닌 핵무기의 전문가이다. 그런 박사에게는 단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 그가 바로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나치즘을 신봉했던 미치광이 파시스트 과학자라는 사실이다. 

스트레인지러브 박사는 콩 소령에 의해 핵폭탄의 투하가 성공하자 혼란에 빠진 미·소 각료들에게 지하탄광, 즉 지하 세계로 대피해야 함을 주장한다. 박사는 또한 핵의 원자로를 이용해 식물과 동물을 키우고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는 한편, 인류의 유지를 위해 남자와 여자를 1:10의 비율로 수용해야 된다고 한다. 참으로 성차별적이고 어이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의 말은 매우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지만 동시에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이다. 미합중국의 대통령인 머플리는 인간의 인간다움에 대해 걱정하지만 박사는 그런 부분조차도 과학적인 세계에서 치료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작중에서 박사는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을 이용해 나치식 경례를 한다. 박사의 오른손은 ‘외계인 손 증후군’이라는 희귀한 병을 앓고 있는데, 놀랍게도 이 병은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는 질환이다. ‘외계인 손 증후군’은 ‘분리뇌’ 현상의 일종으로, 뇌에서 좌반구와 우반구를 연결해 주는 뇌량(corpus callosum, 腦梁)이 파괴되어 일어나는 질환이다.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한쪽 손이 주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무의식적으로 움직인다. 박사의 오른손은 “정체성을 상실한 인간”을 대변하는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오른팔은 스스로의 의지를 벗어나 나치 시대에 입력된 정보만으로 행동한다. 박사는 영화 내내 그러한 오른팔과 씨름을 벌이며 저항하려고 하지만 역부족이다.


이러한 장면은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통제 불가능한 기계적이고 어리석은 모습을 잘 형성화하는 장면이다. 즉 영화에 등장하는 미·소의 고위 관료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영화의 첫 번째 주제였던 “상호확증파괴”를 대변한다면, 스트레인지러브 박사가 보여주는 온갖 기행들은 “통제력을 잃어버린 첨단 기술”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소리다. 박사는 과학의 힘을 이용하면 어떤 고난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처럼 힘주어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몸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허당 과학자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부르짖던 과학에 대한 맹신은 결과적으로 인류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었을 뿐, 인류에게 어떠한 구원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영화의 마지막은 핵폭발 장면으로 마무리 됐지만, 만약 그 뒤로 영화가 5분 정도 더 계속됐다면 어떤 장면이 이어졌을까. 히로시마 핵 투하 이후의 끔찍한 후일담을 그리고 있는 일본의 만화인 「맨발의 겐」 의 일부 장면이 그 해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먼 옛날, 사람들은 코끼리를 조련해 전투나 탈 것에 이용하는 등 실생활에 활용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러나 코끼리들은 자신들을 길들이려는 인간들을 사정없이 밟아죽이며 인간에게 길들여지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과학기술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과학기술을 개발하고 응용하려 한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크기가 커지고 응용분야가 넓어짐에 따라 인간들은 점점 그 과학기술을 제어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본말이 전도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테면 니트로글리세린을 연구하던 과학자는 물질을 부주의하게 보관한 나머지 물질들이 연쇄적인 화학반응을 일으켜 폭발하여 사망하기도 했으며,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물리실험을 자행하던 과학자들이 엄청난 인명사고를 내며 목숨을 잃기도 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연이어 「스페이스 오디세이」, 「풀 메탈 자켓」 등의 영화를 연이어 발표하며 이러한 과학기술의 지나친 발달을 경계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이고는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눈덩이처럼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인류의 과학기술. 그러나 인류는 머잖은 미래에 자신들이 만든 과학기술을 감당하지 못해 역으로 과학기술에 잡아먹혀 스스로 파멸의 길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 마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등장인물들이 보여준 희극적인 모습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이 영화는 ‘픽션’이 아니라, 미래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낸 ‘리얼 다큐멘터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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