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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덩케르크 (2017)> 영화로운 생활

스포일러가 있으니 열람 전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진짜 대형 스포일러가 와장창 들어있습니다.

 중요하니까 궁서체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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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상 중 하나, 크리스토퍼 "더 갓" 놀란

나는 전쟁 영화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반면 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열렬한 팬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차기작은 <인셉션>이나 <인터스텔라>같은 SF물도, <메멘토>처럼 특별한 상황설정이 있는 것도,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같은 히어로물도 아닌 실화 기반 전쟁영화, <덩케르크>였다. 

이 시점에서 나는 엄청난 딜레마에 빠졌다. 내가 아무리 놀란의 광팬이라지만 취향에 안맞는 전쟁영화까지 보러 갈 필요가 있을까?! 개봉 직후부터 한 달 가량(..) 고민을 한 끝에, 스크린에서 내려가기 직전인 8월 8일 오전, 혼자 덩케르크를 보러 홍대 CGV로 향했다. 어어,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원래 혼자 영화보는 걸 무지 좋아한다. 잠깐 눈물 좀 닦고.

그래서, 큰 맘 먹고 보러 갔던 <덩케르크>는 과연 어떤 영화였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느낀 이 영화는 결코 전쟁영화가 아니었다. 음... 아주 엄밀히 말하자면 전쟁영화긴 하지만....... 내 생각에 놀란의 작품 중 이 영화와 가장 비슷한 작품은 내 인생영화 중 하나인 <다크 나이트(2008>였다. <다크 나이트>가 평범한 히어로 영화가 아닌 고담시에 사는 사람들과 배트맨-조커-투페이스 등의 심리를 절묘하게 다룬 스릴러 드라마에 가까웠던 것처럼, 

<덩케르크>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수많은 선택과 갈등을 담백하지만 예리하게 담아낸 휴먼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지금부터 필자가 그렇게 느낀 대목들에 대해 간단히 짚고 넘어가보자.

위문공연으로 온 가수가 태진아

우선 작품을 보는 내내 가장 거슬렸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흥미로웠던 점이 있다. 바로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군인들 가운데 제대로 된 "이름"이 언급되는 인물이 별로 없다는 사실. 어떤 영화를 볼 때 특정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해서 감상하는 타입인 나로서는 다소 껄끄러웠다. 

하지만 곱씹어보니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인물이 '주인공'이고 '중심인물'인가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 영화는 기존에 놀란 감독이 연출했던 다른 영화들과는 성격이 아주 달랐다.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는 잔교에서, 바다에서, 하늘에서 벌어지는 각각의 상황을 급박하게 교차시켜 보여주고 있다. 놀란 영화 특유의 긴박하고 웅장한 음악이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들과 겹쳐져 상영시간 내내 엄청난 긴장감을 준다. 

진작에 도착했어야 할 황금마차가 영 오지 않는다

아, 물론 영화 끝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으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인물들은 분명히 있다. 그들은 어떻게든 지옥같은 전쟁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때로는 양심을 팔아서까지 살아남고자하는 열망을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같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대표적인 예로 잔교에서의 1주일을 보낸 불굴의 이등병들을 살펴보자. 

신인배우 핀 화이트헤드가 분한 병사A 와 아나이린 바나드가 분했으며 작중에서 '깁슨'이라는 인식표를 달고 있었던 병사B, 그리고 원 디렉션의 멤버 해리 스타일스가 분한 병사C 가 메인 등장인물들이다. 바로 위 사진에 나와있는 세 사람. 이들은 우연한 계기로 함께 행동하게 되지만, 목숨이 위험한 결정적인 순간이 되자 각기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같이 외박나온 이등병 후임이 부대 복귀를 앞두고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적의 공격을 받아 가라앉기 직전의 배, 바깥에서는 적의 총탄이 계속해서 날아들고 있으며, 배에 난 구멍으로 물이 차기 시작한 절망적인 상황. 배에 물에서 뜨려면 누군가가 배에서 내려 무게를 줄여야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병사B '깁슨'의 정체가 영국군이 아닌 프랑스군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상황은 더욱 살벌하게 흘러간다. 병사C 는 "영국군도 아닌 녀석을 배에 태울 수 없다"며 병사B 에게 배에서 내리는 협박을 가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지난 밤 병사A와 병사C 는 침몰하는 배에서 병사B 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는 사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후안무치할 수 있을까. 생명의 은인에게 감사를 표하지는 못할 망정 보따리를 내놓으라니. 다행히 그간 함께 행동했던 병사A 는 병사C 보다는 양심적인 행동을 취한다. 병사B 를 감싸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병사C 와 다른 병사들의 "그럼 같이 내리시던가" 라는 말에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침묵하고 만다.

바로 이 순간, 나였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도덕성이나 양심 때문에 목숨을 바치지는 못했을 것 같다. 끽해야 병사A 처럼 목소리를 내는 척 하다가 금방 꼬리를 내리고 침묵했을 것이다. 

연대장님으로부터 쪼인트를 까이고 온 대대장님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그러나 이 영화.... 아니, 어쩌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들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은 어떠한 선택에 대해 명확한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잔교에서 탈출을 위해 대치하던 병사들은 결국 구조되어 무사히 영국으로 돌아오는 데 성공한다. 배 안에서 도덕성을 져버리고 동료를 협박해 살아남았던 병사C 는 그제서야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는 말한다. "우린 패배한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왔어사람들이 우릴 결코 반기지 않을 거야.” ...하지만 왠걸. 영국은 사지에서 살아돌아온 병사들을 누구 하나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문은 그들의 생환을 한껏 치켜세우며 극찬한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윈스턴 처칠의 연설문 역시 그들을 패잔병 취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의 철수는 영국 제국의 '위대한 승리'이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울 것을 천명한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더군다나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였다면 더더욱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는 어렵다. 비록 병사C 가 함께했던 동료들을 버리고 자기만 살아남으려고 했을지언정, 그것에 대해 무턱대고 비난할 수는 없다. 만약 내가 저 상황에 처했다면? 그래도 양심을 부르짖으며 선한 사마리아인이 될 수 있을까? 내 한 몸 희생해서 다른 사람들이 살 수 있다고 한들, 대관절 내가 죽으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가 영화를 통해 느낀 메시지가 바로 이 지점과 맞닿아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단지 '선택의 상황'만을 제시할 뿐, 그에 대한 정답은 주지 않는다. 다만 영화는 처칠의 연설문과 영국 국민들의 환영을 통해 "누구의 선택도 틀리지 않다"라는 '위로'만을 건내고 있을 뿐이다.

항구에서 병사들을 환영해주던 한 노인과 병사C 의 대화가 몹시 기억에 남는다. 

" 저흰 그저 살아서 돌아왔을 뿐인걸요. "
" 그거면 충분하네. "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는 "전쟁 영화"가 아니다. <퓨리>의 호쾌한 전차 액션이나 <밴드 오브 브라더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극적인 전쟁 묘사와 영웅담 따위를 기대하고 영화를 보러간 사람들은 십중팔구 실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가 전쟁을 하나의 '재난'이라고 보고, 그 재난을 맞이하는 '인간'들의 감정을 과하지 않게 절제된 연출로 담아내려 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덩케르크>는 거장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선사하는 또 하나의 명품 드라마이자 관객들에게 깊은 물음을 던지는 철학적인 작품인 셈이다.



평점: 7.5/10


P.S. 이 감상은 어디까지나 저의 주관에 의해 작성된 리뷰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덧글

  • 로그온티어 2017/08/10 02:54 # 답글

    같이 외박나온 이등병 후임이 부대 복귀를 앞두고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한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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